로스터가 로스팅의 목적에 맞게 디벨롭 구간을 설정하여 균형감 있는 플레이버를 끌어낸다면 보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산미를 중시하는 로스터라면 디벨롭 타임을 단축해 라이트 로스팅이나 미디엄 로스팅을 하고, 단맛과 바디를 중시하는 로스터라면 디벨롭 타임을 연장해 미디엄 다크 로스팅이나 다크 로스팅을 하는 식이다.
사실 이 모든 과정이 로스팅에 해당되는 얘기지만 추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기 때문에 로스터는 이후 바리스타가 어떻게 커피를 추출할지도 고려해서 디벨롭 타임을 결정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에스프레소는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커피 고형분을 뽑아내는 방식이기 때문에 추출이 용이하게끔 디벨롭 구간을 브루잉 커피보다 길게 설정하여 생두의 세포구조를 최대한 확장시키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 2차 크랙(220℃) : 빈 온도가 220℃에 이르렀을 때 시작되는 2차 크랙에서는 연소에 의해 원두 내부에 쌓여 있던 이산화탄소가 방출되면서 1차 크랙과 또 다른 소리를 낸다. 연소가 가속화됨에 따라 생두의 세포구조는 파괴되고 내부도 다 타버려 쉽게 부서질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이때 원두는 진한 갈색이나 검은색을 띠며 로스팅이 진행될수록 더 많은 커피 오일이 표면으로 흘러나온다.
또한 당이 열분해 과정에서 대부분 사라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쓴맛의 비중이 높아지고 약한 신맛도 부각될 수 있다. 이 시기에 느껴지는 아로마는 드라이 디스틸레이션의 카본(탄소 또는 탄소로 이루어진 물질) 계열에 속하는 스모키와 유사하다.
- 배출 ~ 냉각 : 로스팅의 마지막 단계인 냉각은 플레이버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굉장히 중요한 절차지만 의외로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원두는 로스팅이 끝나자마자 쿨링 트레이에 식혀도 온도가 바로 떨어지지 않는다. 원두의 외부는 배출 후 차가운 공기와 만나면서 온도가 서서히 낮아지지만 내부는 열량 공급을 중단한 후에도 열이 안에서 밖으로 계속 전달되어 열 손실을 안팎으로 비슷하게 맞추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원두를 빠르게 냉각시키지 않으면 로스팅이 계속 진행되어 의도치 않게 로스팅 레벨에 변화가 생겨 아로마를 잃어버릴 수 있다.
휘발성 기체인 아로마는 높은 온도에 노출될수록 더 많이 배출되지만 원두를 빠르게 냉각시키면 아로마의 일부가 원두 내부에 고체 상태로 남아 발산되지 못한다. 따라서 로스팅 시 냉각은 4분 이내에 40℃ 이하로 마무리해야 한다. 만약 냉각을 4분 이내에 마칠 수 없을 것 같다면 전용 송풍기를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흡열반응과 발열반응]
로스팅은 빈 온도를 기준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로스팅을 시작하기에 앞서 빈 온도의 개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로스팅 시 생두가 드럼에 투입되면 열을 흡수하면서 빈 온도가 올라가지만, 이때 로스팅을 문제없이 진행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화력을 가해 에어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생두는 빈 온도가 최저점을 찍는 터닝 포인트 이후 지속해서 열을 흡수하여 빈 온도가 160℃에 도달하면 단당류의 일종인 포도당이 열분해 되면서 이산화탄소와 물을 생성하고 열에너지를 방출한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생두의 화학변화는 흡열반응에서 발열반응으로 전환된다.
발열반응이 일어나는 구간에서는 화력을 낮춰 에어 온도의 ROR을 감소시켜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생두의 화학적 변화와 이산화탄소 배출이 빨라지면서 에어 온도의 빈 온도와 격차가 점차 줄어들고 드럼 내부의 압력도 급격히 상승하기 때문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화력을 낮추지 않으면 로스팅이 전체적으로 빠르게 진행되어 오버 로스팅된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반대로 화력을 너무 많이 줄이거나 투입 온도를 지나치게 낮게 설정할 경우 에어 온도와 빈 온도의 격차가 커서 생두에 열량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고 로스팅 속도가 느려져 결과물이 언더 로스팅될 수 있다.
따라서 로스팅할 때 온도 조절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흡열반응과 발열반응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에어 온도와 빈 온도에 알맞은 열량을 공급해야 한다.
* 흡열반응 : 열이 흡수되어 일어나는 반응 / 수분 증발 > 부피 팽창(50~100%), 중량 감소(12~20%)
* 발열반응 : 생두의 화학변화와 동반한 열의 방출. 플레이버가 발달하는 단계 / 캐러멜화 > 촉합 반응, 중합 반응
얼음이 물이 될 때는 공기 중의 열을 흡수하여 주변의 온도가 떨어지지만 물이 얼음이 될 때는 열을 방출하여 주변의 온도가 올라가는 것처럼 물질의 상태가 고체에서 액체, 액체에서 기체로 변할 때 흡수 혹은 방출하는 열을 ‘잠열’이라고 하는데, 이는 로스팅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로스팅 시 캐러멜화가 일어나는 구간(160~200℃) 전까지는 생두가 열을 흡수하기 때문에 열량을 지속해서 공급하지 않으면 더 이상 화학변화가 나타나지 않지만 이후 흡열반응이 발열반응으로 전환되는 구간에서는 생두가 열을 방출하기 때문에 1차 크랙 이전에 열량 공급을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모멘텀]
로스팅은 에어 온도가 빈 온도보다 높게 설정되어 있어야 마이야르 반응이나 캐러멜화 같은 화학반응이 중간에 끊어지지 않고 연쇄적으로 일어나며 그 결과 커피에 캐릭터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열량에 맞게 빈 온도를 조절하여 운동량을 구축하는 것을 모멘텀이라고 하는데, 이는 단순히 열량의 많고 적음이나 빈 온도의 ROR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생두는 같은 열량을 공급해도 성분비에 따라 열을 흡수하고 방출하는 용량이 달라서 모멘텀도 달라진다. 모멘텀은 터닝 포인트에서 1차 크랙까지의 온도 상승과 디벨롭 구간에서의 온도 변화로 설명할 수 있다.
커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