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팅은 커피가 지닌 플레이버의 잠재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틀을 마련해준다. 자신만의 커피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인 로스팅은 그만큼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로스팅에는 정답이라고 할 만한 정량적 기준이 없기 때문에 많은 로스터들이 시행착오를 겪는다. 생두를 원두로 로스팅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12~15분의 시간과 200℃ 이상의 열이 필요하지만 로스팅을 언제 마치는 것이 좋은지는 작업이 끝난 후 QC(품질테스트)를 통해 판단할 수 있다. 이 과정을 꾸준히 반복하다 보면 자신만의 로스팅 프로세스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지금부터 로스팅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변화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 살펴보도록 하자.
- 투입 ~ 터닝 포인트 : 투입은 말 그대로 생두를 드럼에 언제 얼마나 넣을 것인지 결정하는 로스팅의 시작 단계다. 예열된 드럼에 실온의 생두를 투입하면 드럼과 빈 온도가 열평형을 이룰 때까지 온도가 계속 떨어지는데, 터닝 포인트가 지나면 다시 상승세를 보이게 된다.
* 터닝 포인트 : 로스팅 시 온도가 처음으로 상승하기 시작하는 시점.
드럼 내부의 온도가 너무 높거나 낮으면, 혹은 생두의 양이 너무 많거나 적으면 그만큼 로스팅에 작용하는 변수가 많아져 리스크가 커진다.
투입 온도는 로스팅 프로파일의 터닝 포인트에 따라 결정하는데, 터닝 포인트의 온도가 너무 낮으면 1차 크랙까지 도달하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로스팅 시간이 길어지고, 반대로 터닝 포인트의 온도가 너무 높으면 1차 크랙까지 도달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로스팅 시간도 짧아진다. 따라서 로스터는 생두 투입량이 정해져 있을 때는 투입 온도를 조절하고, 투입 온도가 정해져 있을 때는 생두 투입량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열량을 조절해야 한다.
- 터닝 포인트 ~ 옐로우 : 일반적으로 터닝 포인트는 생두를 투입하고 1분 30초 ~ 2분 정도(로스터기의 종류와 열원의 비중에 따라 달라진다.)가 경과한 시점이며, 이후로 생두는 열을 흡수하는 흡열 구간에 들어간다. 이 구간에서 생두는 표면을 통해 열을 흡수하며 서서히 온도가 상승하게 되고, 열이 외부에서 내부로 이동하는 열전도가 일어난다. 이때 생두는 열을 전체적으로 고르게 흡수하기 위해 수분이 지닌 전도성을 이용한다. 빈 온도가 100℃까지 오르면 외부의 자유수는 증발하고, 내부의 결합수는 전도체가 되어 생두 밖에서 안으로 열을 전달한다.
생두는 열전도에 의해 흰색 또는 밝은 연두색에서 노란색으로 색깔이 변하고, 100℃를 기점으로 수증기가 발생하면서 내부에 증기압이 형성된다. 그러다 옐로우에 가서는 높은 온도 때문에 조직이 유리화되고 수분함량이 줄어들면서 구조가 불균일해지고 결국 내부 압력의 영향을 받아 부피가 팽창하기 시작한다.
- 마이야르 반응(154℃) : 생두의 내부와 외부 온도의 차이는 154℃에 도달해서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줄어들고 압력도 동일하게 유지된다. 이 단계의 생두는 부피가 팽창하면서 채프(생두의 실버스킨이 벗겨지고 난 후에 남은 껍질)가 벗겨지고 가수분해에 의해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며, 착색 물질인 멜라노이딘과 휘발성 유기물질이 생성된다. 그 결과 원두는 갈색빛이 돌고 특징적인 플레이버를 만들어낸다.
마이야르 반응에 의해 생두 내부의 압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 많은 방향족 화합물이 생두 내부에서 외부로 이동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생두는 유기물질이 분해되고 증기압이 늘어나며 부피가 팽창함에 따라 열을 흡수하는 표면적이 넓어진다.
이 시기에 빈 온도가 전보다 더 빠르게 상승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 캐러멜화(160℃) : 생두는 열분해에 의해 캐러멜화가 진행되면서 탄수화물이 분해되기 시작하는데, 그중에서도 당을 쪼개면 쪼갤수록 단맛은 줄어들고 아로마가 늘어나게 된다. 로스팅 시간이 길어질수록 단맛에 비해 쓴맛이 도드라지게 느껴지는 것도 같은 원리이다.
이 단계에서 생두는 유기물질의 연소로 인해 발생한 이산화탄소와 수분 증발로 인한 증기압의 상승으로 높은 압력을 받게 되며, 생두가 열분해를 통해 조금씩 열을 방출하는 발열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 1차 크랙(194℃) : 빈 온도가 194℃에 도달하면 화학반응은 더욱 활발해져 다량의 이산화탄소와 수증기를 만들어내고, 결국 생두가 커지는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파핑 소리를 내며 부분적으로 깨지거나 갈라지는 1차 크랙이 발생한다. 또한 원두 표면에 생긴 공극에 의해 열을 방출할 때 순간적으로 온도가 낮아졌다가 열을 흡수하면서 온도가 다시 높아지는 증발 효과가 일어나고, 이에 따라 조직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며 세포구조의 균열을 가속화시킨다.
1차 크랙은 로스팅의 종료 시점을 정하는 기준이 되므로 로스팅 프로세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1차 크랙 이후에 생두의 플레이버가 잠재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로스터가 자신의 색깔을 각인시킬 수 있는 것도 이때부터다.
대다수의 로스터가 1차 크랙을 디벨롭(로스팅 진행과정 중 1차 크랙부터 배출까지의 구간을 가리키는 용어)이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보는 이유는 그때야 비로소 생두가 커피로 추출할 수 있는 원두가 되기 때문이다. 한편 로스팅에서 1차 크랙부터 로스팅이 마무리되는 시점까지의 구간이 차지하는 비율을 흔히 디벨롭 타임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로스팅 시간이 총 10분이고 1차 크랙이 8분에 발생했다면 디벨롭 타임은 20%가 된다. 이 시기에 로스터는 원하는 플레이버를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어느 때보다 집중해야 한다.
커피학